아름다운 글

범부채가 길을 가는 법

윤슬1 2016. 7. 11. 13:10




범부채가 길을 가는 법



범부채는 한 해에 한 걸음씩 길을 간다


봄내 다리를 키우고

여름내 꽃을 베어 물고

가으내 씨를 여물게 한다

겨울이면 마침내 수의를 입고 벌판에 선다

겨우내

숱한 칼바람에 걸음을 익히고

씨방을 열어 꽃씨를 얼린다

때로 눈을 뒤집어쓴 채 까만 눈망울을 굳세게 한다


그리하여 입춘 지나 우수 어디쯤

비에 젖으며 바람에 일렁이며

발목에 힘 빼고 몸 풀어

쓰러진다 온몸으로 쓰러진다

키만큼 한 걸음 옮긴 곳에 머리 풀고 씨를 묻는다


발 달린 짐승이라 해서 인간이라 해서

이와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범부채의 일생, 꼭 그럴 것이다


범부채는 한 해에 딱 한 걸음씩 길을 간다


                     -  시  안상학  -